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부동 전투 (문단 편집) ===== 비산 나루터의 교전 ===== 제2대대는 167고지-동락 나루터 사이에 3개 중대를 배치하고 각 중대로 전투정찰대를 편성케 하여 대안을 수색했다. 당시 대대 중앙선에 배치되었던 제5중대 정면인 비산 나루터는 강 기슭에 70 m에 달하는 무명고지와 84고지가 있고, 무엇보다 도섭이 가능했는데, 중대장 정점봉 대위는 이러한 지형의 특성을 감안하여 적이 급속도하를 감행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8월 5일 저녁에 전초진지에 다수의 병력과 화기를 추진 배치하고 침공에 미리 대비하는 바, 이날 23시를 기하여 적이 요란사격이 시작되자, 중대장은 곧 도하가 임박하였음을 알고 안병길 일등중사 이사 10명의 전투정찰대를 대안으로 보내 적정을 탐지하였다. 정찰대가 출발하고 곧 부중대장인 채수익 중위가 강을 건넌 피난민 속에서 위장한 적 편의대 2명을 생포하였으며, 얼마 후에는 중대 좌단 청음초에 침투한 적 1명을 사로잡았다. 한편, 대안으로 침투한 전투정찰대는 무명고지 북쪽에서 84고지를 탐색하다가 적 약 1개 중대가 전투 준비를 앞두고 집결하여 있는 것을 보고 상황이 매우 급박함을 깨닫고 공격신호와 함께 죽음를 각오하는 사격을 퍼부었다. 다행히 갑작스런 기습을 받은 적은 당황하였다. 정찰대는 급히 적과 접촉을 끊고 복귀하였는데 겨우 경상자 2명이 있었을 뿐이었따. 보고를 받은 중대장은 곧바로 대대에 보고했고 대대는 중대의 화력을 통제하면서 공격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록 적이 공격을 개시하지 않았는데 이를 수상히 여긴 중대장이 조명탄을 발사하게 하였더니 전진 20~30m 수면에 30~40의 대나무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으며 그 뒤에는 후속부대 1개 중대 병력이 접근하고 있었다. 조명탄의 발사로 적이 이미 도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중대는 중대장의 신호탄을 시작으로 온 화력을 적 부대에 집중하여 약 10여 분의 교전이 전개되었고 적을 격퇴하고 60mm 박격포로써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 날이 밝은 후 확인하여 본즉, 수면에는 적 시체 49구가 떠다니고 있었다. 중대장은 김재렬 일등상사에게 전과 확대를 지시하여 김재렬 상사는 제3소대의 증강된 1개 분대를 이끌고 대안으로 침투하고 쉬고 있는 부상병 10여 명을 발견하여 이들을 포로로 잡은 후 복귀하였다. 이 교전에서 아군은 겨우 부상자 대여섯 명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적의 손실은 매우 커서 대나무를 입에 문 채 죽은 적의 시체와 약 60 cm짜리 대나무 20여 개가 교전 지점에서 남으로 약 1km 거리에 있는 제7중대 인근에서도 발견되었다. 교전이 끝나고 대대는 이때의 교전을 교훈 삼아 적의 접근을 사전에 발견하고자 특공대를 조직하여 이 임무를 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